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정북당국에서는 17일 야간에 계엄령을 확대 선포하고 일부 학생들과 민주 인사, 정치인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구실로 불법 연행하였습니다.

18일 아침에 각 학교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대검을 꽂고, “돌격앞으로!!”를 감행하였고, 이에 우리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 당국의 불법 처사를 규탄하였던 것입니다.

계엄 당국은 18일 오후부터 공수부대를 대량 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 젊은이들에게 무차벼려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5.18광주 민주화 운동 사료 발췌-

 

 

  

 

 
 

 

 

 

 신군부의 등장과 "서울의 봄", 그 아이러니.

33년 전, 유신체제의 종식과 “서울의 봄”이라는 희망찬 기대감은, 12월 12일 신군부등장으로 철저하게 무너져버렸습니다.

1979년, 10.26사태로 인해,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졌으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그것이 1979년 12월 6일의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최규하대통령이 대통령자리에 앉았던 시기는 정확히 5일밖에 되질 않습니다.

바로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을 주축으로 벌어진 12.12사태 때문이었지요.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등의 온건파를 제거하고 군부를 빠르게 장악한 신군부 세력의 권력쟁탈사태. 그것이 바로 12.12사태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의 5.16 군사쿠데타입니다. 이를 모티브로 삼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당부분이 닮아있는 사건이니 말입니다.)

 

어쨌든, 이 12.12사태를 통해 한순간에 전두환은 실질적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의 시대는 바야흐로 1979년, 그리고 1980년.

제 4공의 유신체제로 고통받던 시민들에게는, 이제 겨우 숨을 쉴수 있겠다는 희망이 분노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시작과 탄압 

1980년 5월 15일 “서울의 봄”을 꿈꾸던 시민들과 학생들의 절망감은 분노가 되었고,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5.18민주화 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주장한 것은, 유신헌법의 폐지, 전두환 등의 신군부 퇴진, 그리고 비상계엄 철폐등, 민주적 절차를 밟아 민간정부를 수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는 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기에 이르렀고, 국회를 폐쇄했으며 정치활동을 금지했습니다.

또한 대학을 폐쇄하고, 파업금지와 언론검열 강화 등을 포고했고, 학생운동의 지휘부, 고 김대중 전대통령 등, 정치 인사들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등, 무력 진압을 감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작금의 사태를 생각해 보건데, 가끔씩 저는 시대가 역행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아마도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상황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게 되자, 광주에서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부르짖었을 뿐인 이 학생들을, 계엄군은 과잉진압했으며, 그로인해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태들은, 분노한 시민들을 시위에 합류하도록 만들어버렸지요.

 

 

 

처절했던 9일, 절규와 혼란속 자유에의 갈망

시민과 계엄군의 대치는 지속되었고, 발포와 사망자 속출,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며, 시민들은 “시민군”을 조직하고 광주시를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계엄군은 광주를 봉쇄해버렸고,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무장해제를 감행한 시민군은 무차별적으로 진압되어버립니다.

이것이 5월 18일에서 5월 27일의 짧았지만 처절했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무력탄압을 담은, 5.18민주화 운동입니다.

 

 

 "5.18민주화 운동"을 역사에 새기다

작년, 5.18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고 볼수 있는, 여고생의 일기, 5.18 사태 일지, 피해 상황과 수습대책, 복구 기준 등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에, 일부에서는 “잔인하고 시대역행적이던 상황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게 말이 되느냐”하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잔인하고 비참했지만, 그 속에서 빛났던 학생, 시민들의 희생”을 생각해야 하며, “그러한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안좋은 일련의 사건들도 우리의 역사”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 불리는 "여고생의 일기" 연합뉴스 발췌-

 

 

 

그리고, 5.18민주화 운동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로 2007년, 제작되었으며, 물론 영화화 하는 과정 속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짧은 시간의 영화에 담아내기 위해, 다소 지나친 우연성과 연계성을 보여주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로 인해, 5.18을 잘 모르고 자랐던 세대들에게 그 시대의 자유를 탈취당했던 그 처참했던 시대를 인식할수 있게 해주었음에 분명합니다. 혹시, 5.18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계신다면, 한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화 "화려한 휴가"포스터 발췌-

 

또한, 5.18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그 시절을, 우리는 웹툰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웹툰 중에 연재중인 “김철수씨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웹툰작가님이신 “수사반장”님께서 연재하시는 웹툰이니,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2012년 5월 18일, 우리가 누리게 된 많은 자유들이, 어디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인가를 다시금 되짚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5.18 그리고 6월 항쟁에 이르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이만큼의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어버린, 현대사 속의 비극들..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 현대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 핑계로 지나쳐버렸던, 알지못했던 진실들을 이제나마 그분들의 희생의 몇만분의 일 정도, 딱 그정도 이해하게 된듯 하다.

참으로 잔인한 이 사건이, 비단 30여년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믿기가 쉽지는 않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다보면, 간간히 지금이 2012년인가 싶은 기분도 든다.

제발, 역사를 역주행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앞서나가는 모습을, 아주 조금이라도 볼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Posted by eri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