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 이형기 -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좀 우울한 날, 불안한 날 읽는 시가 몇개 있습니다.

시라는걸 원래부터 좋아한건 아닌데, 읽다보니 마음이 와닿고..

가끔씩 위로를 받기도 하다보니..

습관처럼 시를 찾고, 시를 읽고, 시를 음미하고, 감정이입을 하곤 하네요^^

 

이 이형기시인의 "호수"라는 시는,

첫부분부터 쭈욱 읽어내려갈때는 큰 울림이 없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저 마지막연이 너무 참 많이 와닿더군요;;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1~2연]우리는 누구나 무언가를, 어떤 시간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은 지루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며 외롭기도 하지요.

자신의 감정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3~4연]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숙해져가다보면,

관조적인 자세로 기다릴수 있게 되며, 달관하기도 합니다.

 

[5연]바로 이러한 "기다림"이라는것을 마음속에 지니는 것을..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라고 내면화시킬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단 기다림뿐일까요..

삶이라는게 다 그런것 같습니다.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Posted by eriny